오늘은 요즘 읽기 시작한 책의 한 부분으로부터 시작해 보자.
"예술 작업은 자기 회의를 유발시키며, 자신이 이래야만 한다고 알고 있는 것과 이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간에 놓인 깊은 강을 휘저어 놓는다."
나는 예술가가 아니라 사기꾼이다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확신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낫다
나는 그저 학생, 엄마 등등에 불과하다
나는 전시다운 전시를 해본 적이 없다
아무도 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도 내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다
"현재 진행 예술가들이 중도 포기한 예술가들과 다른 점은 이러한 두려움에 도전하여 멈춤 없이 밀고 나간다는 점이다.
예술 창작 과정의 매 단계가 바로 이 문제의 시험장이다." -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중에서
밤 10시.
트레드밀에서라도 18km 달리기 위해 서둘러 헬스장으로 내려갔다.
시속 9km로 워밍업을 하고
서서히 속도를 올려 10.5km로 지속주했다.
초반 3km를 달릴 때까지 몇번이고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다.
손가락 하나를 뻗어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곧장 이 레이스를 끝낼 수 있었다.
이 손 쉬운 유혹거리에 잠시 잠깐 마음이 흔들렸다가는 끝장이었다.
실내 달리기가 가진 또 하나의 단점.
속도에 따른 시간은 대략 예측이 가능하지만
그때까지 이 속도를 내 심폐와 다리가 버텨줄지 매번 불확실하고 그렇기에 두렵다.
이렇게 열심히 달렸는데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 후에 목표 거리를 달성하지 못하고 끝내게 될까봐.
4km를 넘어가면서 할만해졌다.
가끔씩 무너져가는 자세와 호흡을 가다듬으며 무리없이 나아갔다.
6km를 넘어가면서 오른쪽 엄지발가락 윗쪽이 아파왔다.
나이키 운동화의 발등 덮개가 이동하면서 딱딱한 테두리 부분이 엄지발가락 관절을 짓누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 샀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이 운동화의 고질병을 떠올렸다.
그러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몇년 째 실내용으로 신고 있는 내가 미웠다.
땀이 너무 많이 났다.
위급할 때 손으로 잡으라고 있는 트레드밀의 양쪽 팔걸이 부분이
팔치기의 땀으로 흩뿌려져 흥건했다.
땀이 아니라 물을 흘린 것으로 착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며 물을 마시는 연습을 병행하면서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약하게 틀어 둔 에어컨이 실내의 습도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가운데
실내에다 밤이기 때문에 모자도 쓰지 않은 내 얼굴 위로 폭포처럼 땀이 쏟아져 내렸다.
결국 7.5km를 달렸을 무렵 잠시 멈추고 신발을 안 아프게 다시 조절하고 START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이게 왠걸!
시간이며 거리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트레드밀의 18km를 인증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사라지자 더 달리려는 의욕이 싹 사라졌다.
이룰 수 없다면 빠르게 포기.
하는 습성이 또 튀어나왔다.
어쨌든 자기비하에 빠지지 않고 조금 긍정 쪽에서 생각해보자면
그래도 오늘의 운동을 딱 적당량 채웠다는 점이 있다.
오늘은 그냥 쉴까?
벤치프레스만 할까?
내일 뛸까?
했던 생각을 이겨내고
실내에서 오랜만에 달리기를 시도하고
가장 힘든 초반 부분을 잘 넘어갔고
러닝 자세에 대해 조금 더 연습할 수 있었고 보다 익숙해졌으며
몸도 뇌도 최고로 활성화 된 상태로 공부나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고
한 시간 가량의 시간도 아껴서 더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점.
이제 7.5km 정도는 (대략 37분 정도였던 걸로 기억)
이 속도로 달려도 크게 무리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고
이 정도의 달리기로는 다음 날 후유증이 거의 없을 거라는 느낌도 알게 됐다.
여러모로 충분히 뿌듯해 해도 될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장편소설에 대해 얘기한 부분을 달리며 들었다.
적어도 하루에 10km의 거리를 달리고
적어도 하루에 원고지 20매 분량의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잘 모르는 나날들이 대부분이었고
무엇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있을 때만 글을 써 왔다.
그러니 자연히 글쓰기를 좋아하면서도 오랫동안 쓰지 않는 사태,
오랫동안 쓰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게 아닐 거라는 추측,
가끔 글쓰기를 좋아는 해도 잘 쓰는 일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는 비하,
등으로 점점 멀어져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살아야겠다.
지금 글쓰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글을 쓴다기 보다
글을 쓰다 보면 글쓰기가 더욱 좋아지기 떄문에 쓴다.
지금 봐줄 만한 작품을 쓰기 위해 글을 쓴다기 보다
현재 수준에서 쓸 수 있는 작품을 써 가며 경험치를 쌓고 레벨업을 하기 위해 쓴다.
목표 거리를 완주하기 위한 달리기이기에 앞서
오늘도 이만큼 끙차끙차 달린 나의 업적에 만족하고 그로 인한 탁월한 효과를 온전히 누리자.
인생의 한 페이지를 또다시 올곧게 장식할 수 있게 해준 사실에 감사하자.
결국 우리는 목표에 닿게 될 테니.
그리고 나중에는 애 쓰지 않아도 현재 목표 따위는 쉽게 닿을 수 있게 될 테니.
글쓰기를 하든 안 하든 글쓰기에 대한 열망 혹은 로망은 아직까지 충분할 만큼 남아있고
다른 사업이나 투자로 부자가 되어도, 아니 부자가 된다면 반드시 더욱 전업으로 나서게 될 직업이 소설가이기도 하다면,
아직 전혀 부자가 못된 지금 당장,
하루 한두 시간 정도 매일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일을 하지 못할 이유가 단 하나라도 있는지?
내가 무엇을 하든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딱 한 가지 어떤 일을 택할 것인지?
내가 무엇을 하든 무조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딱 한 가지 어떤 일을 택할 것인지?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꿈은 언제나 실행에 선행하고, 재료에 대한 지식은 현실과의 접촉을 이야기해주며,
불확실성은 하나의 미덕이다." -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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